우리나라 북쪽 끝에 경기도 파주가 있다. 여러 출판사가 옹기종기 모여 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만약 출판 편집자가 되고자 한다면 한번 가보기를 바란다. 날을 잘 골라서 가야 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춥고 안개가 많이 끼는 곳이다. 공간이 넓게 조성된 카페가 많아 그럭저럭 돌아다닐 만하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들 앞에서 사진도 몇 장 찍어보자. 운이 좋다면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온 유명 작가를 목격할 수도 있다. 몇몇 유명 출판사 앞을 지나다 보면 출판 편집자의 일이 제법 의미 있고 낭만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출판단지 외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름 모를 출판사의 명패가 눈에 띈다. 텅 빈 사무실도 보인다. 좁은 개울이 흐르고 개울가에 무성한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오르르 운다. 기근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처럼 삭막한 풍경이다. 출판 편집자의 일이 녹록지만은 않겠구나 싶다. 자가용을 몰고 왔는지 모르겠다. 다른 약속이 없다면 한 군데를 더 들러보자. 앞으로는 긴장을 좀 하는 게 좋겠다. 북쪽으로 더 올라가야 한다. 얼마간 가다 보면 널찍한 임진강이 보인다. 대낮인데도 걷히지 않은 물안개가 희끄무레하다. 산 사이로 길을 낸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간다. 반 시간 남짓이면 도서물류센터에 도착할 수 있다. 애당초 목적지는 이곳이었다.
도서물류센터는 실로 거대하다. 높은 천장 아래 도서 수납용 랙이 90년대 아파트 단지처럼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수십만 권에 이르는 수천 종의 책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그중 몇 종은 고전이 되어 꾸준하게 판매된다. 그러나 책 대부분은 판매되지 않는다. 서점 전산망에 수년 동안 ‘재고: 1,084부’로 기록되어 있다. 책값이 임대료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그 책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 연도가 지났다는 이유로 쌓여 있는 문제집도 상당수다. 이런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광경이다. 사양산업.
내가 실제로 던졌던 질문이다.
“출판 시장은 사양산업 아닌가요?”
“아니죠.”
출판계 중견 편집자들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들은 아직도 백만 부짜리 베스트셀러가 쏟아져 나오던 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서 살아간다.
중소 출판사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몇몇 유명 출판사의 매출은 유지되고 있다. 물가상승률과 코로나 특수를 고려하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만 본다면 출판 시장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아닌가. 도서물류센터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 쌓여 있고, 책을 읽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출판사는 매출을 낸다. 수많은 신입 출판 편집자는 매출 수치를 믿는다. 그 수치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출판계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을 무렵, 나는 북에디터 같은 사이트에서 공고를 살펴보았다. 잘 알겠지만 수많은 출판사가 상시 공고를 올려둔 상태다. 하지만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이 바라는 인재는 2년 차에서 3년 차 경력자였다. 연봉을 많이 줄 필요가 없으면서도 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경력자. 이들은 늘 인력난에 시달리면서도 신입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신입이 된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신입을 가르칠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밝히자면 출판계에서 신입이 받는 연봉은 2,2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다. 연봉상승률은 물가상승률보다 낮으니, 일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 이상하게도 출판계는 연봉을 쉬쉬한다. 연몽을 이야기하면 속물로 보는 인식이 실재하며 또 팽배한다. 연봉의 음지화가 극심한 나머지, 익명으로 연봉 정보를 공유하는 출판계 스프레트시트가 있을 정도다. 돈 줄 생각은 없으면서 일은 시키려고 하는 위선을 감내하고서도 출판 편집자가 될 마음이 여전하다면, 아마도 당신은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일 테다. 나 역시 그러했고, 내 동료들 역시 그러했다.
흔히 생각하는 출판 편집자의 장점을 몇 가지 나열해 보겠다.
존경하는 작가와 작업하는 것? 실제로 그 작가는 존경받을 만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많은 작가가 몹시 위선적이거나 극도로 예민하다.
글을 잘 쓰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것? 이제 글을 잘 쓰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가 낫다. 돈이 많아서 스스로 책을 수천 권씩 구매할 수 있는 작가면 더 좋다. 가난하고 유명하지 않지만 글은 잘 쓰는 작가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몇백만 원에 대필을 자처한다.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며 보람을 느끼는 것?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중요한 건 ‘출판 편집자가 만들고 싶은 책’이 아니라 ‘팔릴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을 담은 책보다 똑같은 내용을 표지 갈이한 스테디셀러가 더 가치 있다.
편하게 일을 하는 것? 오늘날 출판사는 책의 질보다 양을 중시한다. 책의 평균적인 구매량이 떨어진 탓에 책을 많이 내가며 베스트셀러 한 방을 노리기 때문이다. 출판 편집자는 책을 찍어내는 일은 물론, 출판사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잡무를 처리한다. 특히 부유하고 힘 있는 작가의 비위를 맞추는 감정노동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들은 일을 하므로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에 연락한다.
지혜로운 선배가 많은 것?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기심, 편협함과 고지식함을 지적인 어투로 숨기는 데 능숙한 사람은 많다.
베스트셀러를 내고 성공한 편집자가 되는 것? 베스트셀러를 낸다고 해서 연봉을 더 주지 않는다. 스스로 사장이 되지 않는 한 베스트셀러 편집자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거의 없다.
많은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편집자에게 강요한다. 기업의 당연한 생리겠지만, 문제는 그 정신적 압박과 물리적 업무 강도가 합당한 대가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사의 매출은 유지된다. 마케팅과 홍보에 돈을 쓰지 않고 인건비는 감축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온다고 해도 그 돈은 출판 편집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대형 저자를 끌어오는 데나 사용될까.
출판 편집자의 일은 실로 비참하다.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이후로는 동어반복만 할 뿐인 유명 작가에게 원고를 구걸해야 한다. 출판 이유를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책에 형형색색 포장지를 씌워 독자를 속여야 한다. 세상을 조금도 나아지지 않게 만드는, 솔직히 종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책을 수천 권씩 찍어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충분한 대가 없이 한다. 명백하게 사양산업인 출판 시장에서 출판사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도서물류센터에 가보기를 바란다. 무명 저자를 어떻게든 띄워보겠다고 책 내용과도 안 맞는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제목과 카피를 달아놓은 책이 있다. 첫 책 이후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유명 작가의 아홉 번째 책이 있다. 학계와 정계에서 알아주는 인사인 덕에 책 출간 직후에 언론사에서 밀어줬지만 팔리지는 않은 책이 있다. 자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며 호언장담했지만 1쇄도 다 소진하지 못한 연예인 작가의 책이 있다. 이념적·정치적 논쟁을 이용해 한몫 벌어보려고 판권을 사들인 외서가 있다. 정말이지 아무런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책이 무수히 쌓여 있다. 무너져가는 출판 시장을 억지로 세우기 위해 쌓아 올린 모래 기둥들이다.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다면 이런 질문들을 곱씹어보길 바란다. 출판사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해도 좋은가?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희생해도 좋은가? 덧붙여,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를 희생시키는 건 좋은가?